g:colon book2015. 4. 7. 14:08

2장.
디자인스케이프

2
공공적
사물


벤치 미니그래피티

고즈넉한 풀밭 위의 휴식 한 모금.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그림이다. 한 시민이 단조로운 색으로 칠해진 벤치 한 편에 화룡점정畵龍點睛처럼 작지만 정교한 그래피티를 그려놓았다. 호수가 많은 핀란드의 이 낡은 벤치는 주목성의 원리를 잘 구현하고 있다. 단순한 배경에서의 복잡하고 정교한 그 림이나 문자는 주목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친근한 일상디자인의 혜택을 받은 벤치는 위트 있는 분위기로 여유 있는 도시인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회전광고판

회전문, 회전초밥, 회전 간판……, 빙글빙글 돌아가는 도시는 어지럽다. 곳곳의 무수히 많은 간판 때문에 사람들은 시각적 어지러움에 지쳐 있다. 공공의 제지가 있음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목 끌기 간판이 반복되는 상황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만의 특수한 거리맥락을 인정한다면, 차라리 독특한 한국의 시각 환경으로 특화시킬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모터를 달아 회전하는 이 간판은 시각면을 최대한 활용한 광고판이다. 네 개의 면에 새겨진 광고문구가 돌아가면서 행인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마치, 스피드하게 움직이는 사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것 같은, 우리들의 조급함이 담긴 광고판 같다.

 

 

간장통 간판

손님은 길거리에서부터 유인해야 한다. 상인은 간장을 담던 플라스틱 용기에 매직펜으로 음식 메뉴를 적음으로써 간판기능을 부여했다. 간장통이 간판프레임으로 활용되는 것은 평소 사용하던 소재를 통한 익숙하고도 편안한, 서민적인 정서의 반영이다. 이색적인 오브제의 사용은 레디메이드ready-made된 획일적 스타일의 추종을 따르지 않는 재미가 있다. 상인의 애간장을 태우던 손님 끌기는 간장통을 통해 일단락의 해결방법을 찾은 듯하다.

 


 

 

나무안내판

안내판에는 그곳의 디자인문화가 담겨 있다. 핀란드 헬싱키의 길가에서 버려진 나무판자와 나뭇가지로 만든 안내판이다. 이 안내판은 전 세계 공통적인 디자인 문화의 한 양식을 본 것처럼 반가운 일이다. 선진국 도시에서 현대적 공공디자인을 보는 것보다 후진국의 골목이나 시장에서 서민냄새 나는 디자인 문화를 들여다보는 것이 더 흥미로울 때가 있다. 기성디자이너가만들어 낸 숨 막히는 팽창의 사물보다 소박한 일상의 사물을 보는 것은 디자인의 본질을 꿰뚫어 볼 유용한 관찰법 중 하나이다.

  

청바지 간판

새 청바지가 이유 없이 걸려 있다. 나무판자 위에 청바지 한 장을 걸어 놓은 것으로서 소품을 활용한 고객유인간판이다. 바르셀로나 시내의 한 건물 벽에 설치된 이 간판의 역할은 골목 안쪽에 숨어 잘 드러나지 않는 매장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이다. 상품과의 시각적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매장 들어가기를 머뭇거리는 소비자에게 과감한 결단을 도와준다. 별다른 장치 없이 매장상품 일부를 연결해 보여주는 방식은 소비자의 반쪽 호기심이 매장 안에서 채워지기를 바라는 점포주인의 노림수가 아닐까.

 

 

그래피티 영혼의 도시

도시가 순수한 화가의 열정으로 물들어 있다. 칠레 제2의 도시 발파라이소는 이름 없는 화가의 영혼들에 의해 채색된 곳이다. 이곳의 젊은 작가들은 자신의가난함과 예술적 울림을 집 벽이나 담벼락에 풀어낸다. 동네 곳곳은 화폭처럼 색색이 단장되어 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들어냈다. “몇 페소의 물감을 살 돈만 쥐여 준다면, 당신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주겠소”라는 이들의 순수한 예술가정신은 도시 전체를 생기 있는 갤러리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일상 쓰레기 소각로

일상에서 쓰레기 소각은 크게 죄악시되지 않는다. 대만의 아리산관광지에서 발견한 이 소각로는 사이즈가매우 큰 것이었다. 대형 철제통 안에는 연기를 배출하기 위한 일정한 구멍과 이동을 쉽게 하기 위한 손잡이와 바퀴가 달려 있다. 잡목이 우거진 주변 환경 탓에 나뭇가지 등을 처리하기에 적합한 형태이다. 타이베이 도심에서도 소형의 간이 소각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미 기성품화 되었음을 볼 때 사람들에게 쓰레기 소각이 일상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상에서 제작되는 소각로는 주변 환경과 배출량을 고려하여 다양하게 변형된다. 다만, 환경이슈를 생각해볼 때, 소각으로 말미암은 유해물질 문제를 해결해 줄 일상의 지혜로운 자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마을을 위한 안내 표지판

마을버스는 시민의 발이다. 오랫동안 마을과 맺어온 친근함을 무기로 한다. 이 표지판은 근처 철공소에 주문하여 폐기된 차륜과 파이프를 용접하여 만든 것이다.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동네주민에게 마을버스의 정류장 위치는 익숙한 정보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정보에서 소외되었던 주민의 민원이 발생하면서, 지역 부녀회에서는 팔을 걷고 정류장 안내 표지판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공공기물은 공동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에서 협의되고 만들어 진다.

 

Posted by 지콜론북 G콜론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