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olon book2014.05.09 17:47

크리에이터의 즐겨찾기 2

: 23인 창작가의 공간과 시선 


글_김도훈



지적인 허드렛일

 

내가 크리에이터인가? 글쎄,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잡지 글을 쓰는 건 크리에이트create라기보다는 일종의 리-크리에이트re-create이자 큐레이트curate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에디터로서 글을 쓰는 행위에는 단순히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들기는 것 이외의 부차적인 작업들이 따른다.

 

레이아웃을 잡고, 이미지를 찾고, 혹은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종이나 인터넷 바탕 위에 그 모든 것을 퀼트 만들 듯 기워낸다. 별로 고상한 일도 아니고 고요한 일도 아니다. 에디터라는 직업은 가히 지적인 허드렛일로서, 지적인 유희만큼이나 육체적 노동도 필요하다. 아니다. 나는 지금 에디터라는 직업을 업신 여기며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에디터라는 직업을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찬양하고 싶어 이런 글을 쓰고 있다.

 

크리에이터도, 예술가도 아닌 만큼 내가 글을 쓰는 공간도 한정되어 있지 않다. 가로수길과 광화문의 카페, 잠원동의 사무실 등 맥북과 아이폰과 성한 손가락이 있는 장소라면 어디서든 글을 쓴다(특정 장소가 아니라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에디터라는 직업을 얼른 포기하고 멀리 달아나야 마땅하다!). 다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 공간이 역시 집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공덕동의 오래된 한옥과 멀리 여의도 빌딩까지 보이는 25평짜리 아파트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나는 가장 큰 방을 통째로 서재 겸 작업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럭저럭 편안한 책상과 의자도 구입했다. 토드 셀비Todd Selby의 책에 나오는 구라파 에디터들의 근사한 작업실처럼 만들고 싶은 허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서재 겸 작업실을 무시하고 카펫이 깔린 거실에 작은 무인양품 테이블을 들여 놓고는 푹 퍼져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에서 였을까. 아마도 책과 책과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가 어쩐지 갑갑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바닥에 앉아서 글을 쓰는 좌식 생활이 푸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고양이를 무릎에 올리고 작업하기에 그쪽이 더 적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유는 전혀 다른 데 있었다. 나는 거실에 40인치짜리 TV와 전 세계에서 긁어모은 온갖 오브제들을 설치했는데, 글을 쓸 때마다 이것들을 들여다봐야 어떤 같잖은 영감이 두뇌 속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실 나에게 영감은 지나치게 많은 곳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도대체가 그 근원을 파헤칠 재간이 없다. 영화, 사진, 미술, 음악, 그 외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추하고 별난 것들, 그중에서도 내가 갖고 싶은 것들. 그렇다. 나는 지금 ‘글쓰기 30분 + 온라인 쇼핑 30분’이라는 세상 모든 에디터들의 업계 비밀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업계의 비밀이 그리 부끄럽지도 않다. 쇼핑은 무엇보다도 취향의 행위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살 수 있다.

 


중요한 건 큐레이팅이다. 나는 볕이 좋은 날이면 명동, 홍대, 가로수길, 압구정동, 청담동의 멀티숍을 모조리 돌아보는 취미가 있는데, 이건 단순히 소비를 위한 강박적 행동은 아니다. 지금 한국의 멀티숍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의 어떤 총합이다. 각각의 멀티숍 오너들이 각자의 취향으로 전 세계에서 가져온 제품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세대의 가장 중요한 두 단어가 ‘취향taste’과 ‘큐레이션curation’일거라 거의 확신하게 된다.

 

온라인 멀티숍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옷이라고 해도, 각각의 온라인 멀티숍은 서로 다른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제품들을 갖다 놓는다. 캐나다의 SSENSE.COM이 팔고 있는 황금색의 마르지엘라 지갑은, 스웨덴의 TRESBIENSHOP.COM의 마르지엘라 제품 중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스웨덴의 컨템포러리한 멀티숍이 보기에 그건 지나치게 우아한 취향의 물건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그저 주인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각각의 온라인 공간으로 들어설 때마다 나의 취향과 그들의 취향을 비교하고 겹쳐본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내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큐레이팅한 뒤 마침내 맥북을 열고 활자를 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크리에이트는 아니다. 혹은, 이것도 크리에이트인가?

 

글의 전문은 『크리에이터의 즐겨찾기 2 : 23인 창작가의 공간과 시선』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김도훈

 

글쟁이. 영화 주간지 <씨네21>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한국의 첫 번째 로컬 남성지 <GEEK>에서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지금은 온라인 뉴스 사이트(라고 쓰고 ‘매체의 미래’라고 부르는) <허핑턴 포스트> 한국판의 공동 편집장이다. 그 외 리스트를 늘어놓기 황망할 만큼 많은 매체에 거의 모든 것에 대한 글을 써왔다. 종종 부끄러움도 없이 시침 뚝 떼고 아마추어 포토그래퍼라는 직함을 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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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콜론북 G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