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2012.01.06 11:00

 




디자인 이전의 메시지


그래픽디자이너 강구룡

 

강구룡은 과잉을 멀리하는 사람이다. 의미 없는 의미 부여나 허공에 맴도는 개념 정의 같은 것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그는 수사학을 좋아하고 정리를 좋아하며 철저히 계산되어진 알고리즘으로 완성된 작품에서 희열을 느낀다. 알고리즘은 거대한 우연과 즉흥으로 점철된 예술의 ‘불확실성’을 파고든다. 그의 작업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지만 그것은 철저한 사유와 계산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그의 작업도 (인간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결국은 예측할 수없는 (예를 들면 인쇄 사고와 같은) 상황 속에서 결말을 맺거나 더욱 발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디자인이 완성되는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자인에서 층층이 쌓인 껍데기를 하나씩 벗기고 나면 맨 마지막에 남는 진정성과 메시지일 것이다. 디자인보다는 그것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한다는 그래픽디자이너 강구룡, 그의 작업에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무는 까닭이다.

에디터 유인경 사진 김상미

 


강구룡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던 그는 디자인 교육자 성재혁 교수의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듣고 글자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껴 그래픽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포스터, 북디자인, 카탈로그 등 글자와 관련된 작업을 즐기며, 알고리즘을 통해 정보를 처리하는 실험을 좋아한다. 졸업 후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그래픽디자인 실무를 경험하고 프리랜서로 독립한 후 본격적으로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최근엔 GUI에 흥미를 느껴 현재 LG 전자의 GUI디자이너로 일하며 개인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www.hellogriong.com

 




현재 LG 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서 GUI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이제 4개월 정도 됐다. 아직 GUI에 대해 잘 몰라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이전에 종이책을 많이 만들었었는데 아이패드나 아이폰을 보면서 그 안의 아이콘 같은 것에 흥미가 생겼다. 막상 해보니 종이책을 만들 때와 큰 차이는 없는데 아무래도 환경이 바뀌다 보니까 디바이스도 바뀌고 기술적으로 배워야 할 게 많다. 책이 판형을 바꾸듯이 해상도가 늘어나면 아이콘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식이다. 그런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중인데 전체적으로는 지금까지 내가 계속해왔던 디자인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재미있게 배우고 있다.

 



그동안 인터뷰했던 내용을 보면서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그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것을 담으면서 동시에 제3자와 소통할 수 있는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100%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글이나 말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그런 것 때문에 디자인이 재미있는 것 같다. 사용자가 백지 상태에서가 아닌 자신의 경험으로 보게 되니까, 거부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다. 예전에 <A4> 전시 때는 나한테 ‘(디자인이) 왜 이렇게 딱딱하냐고’ 따진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딱딱함을 통해서 따뜻한 감성을 느낀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이해를 못하더라. 그러니까 나는 타인과의 소통보다는 내 자신하고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꼼수를 부리면 작업에서 드러나니까. 책을 만들든 뭘 하든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자기합리화를 시키면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 작가가 자신에게 정직하고 자신과의 소통이 잘 된 상태에서 나온 작품을, 사람들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신중하려고 한다.




<A4 PAPER>

포스터, 2010 그래픽디자인 전시 <A4>의 2회 포스터, 594x840mm

 




작업할 때 오래 걸린다고 하는데, 어느 단계에서 가장 오래 걸리나

지금까지 포스터 작업을 가장 많이 했는데, 포스터는 보통 디자인을 잘 하는 사람은 2~3일이면 작업이 끝난다. 그런데 나는 포스터 한 장 만드는데 석 달이 걸리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드는 시간은 거의 6~7시간이면 끝나는데, 준비하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할 때 생선을 사다가 하면 되는데, 그 생선을 직접 만드는 경우다. 포스터 때문에 서체를 새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작업들은 굉장히 오래 걸리지만 완성했을 때 그만큼 희열이 있다. ‘내가 전부 다 했다’ 하는. 그리고 사실 그게 디자이너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델인 것 같다.










<A4 Exhibition>포스터, 2011 그래픽디자인 전시 <A4>의 3회 포스터, 1189x841mm

 

 




이전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디자이너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재능’이란 것을 제외하고,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소양이란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

소양이라기보다는, 나는 디자이너들이 좀 멀리 봤으면 좋겠다. 디자인을 하루 이틀하고 끝낼 게 아니니까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작업이 좀 안되더라도 내일은 잘되겠지, 하는 마음. 인내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급함을 없애는 것이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도 예전에는 굉장히 조급했다. 빨리 결과가 안 나오면 막 짜증이 나고. 그래서 컴퓨터를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조급하지는 않다.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아지는 게 있는 것 같다. 좀 더 유연해진다.



개인작업을 할 때 주제는 어떻게 정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나

아이폰이나 아이맥 같은 컴퓨터를 다 없애고 손에 아무 것도 없을 때 메시지가 딱 떠오른다. 내가 생각했을 때 중요한 건 아이디어 보다는 내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하는 메시지다. 그 메시지 하나만 보고 나머진 다 치우고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난 원래 체계적인 사람이 아닌데 작업할 때는 체계적으로 바뀐다. 알고리즘을 좋아하고 템플릿을 좋아한다. 굳이 내가 안 만들어도 누구라도 할 수 있게 작업 과정을 시스템화하는 거다. 작업 전에 일종의 설명서를 만든다. ‘일러스트를 열고, 사각형을 이렇게 만들고, 달력은 1번부터 10번까지 탭키로만 사이값을 두고’ 이런 식으로 큰 키워드를 정해놓으면, 다른 사람도 그걸 보고 조립하듯이 만들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작업할 때 최대한 감정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걸 좋아한다. 사람이 감정을 얼마까지 안 넣을 수 있을까 실험하듯이.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터도 그렇고 늘 작업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인쇄되어 나온 작업이 예상과 다르다거나 하는. 아무리 수학적으로 풀어도 현실세계에선 ‘갭’이란 것이 생긴다. 그때 또 재미있는 건 우연히 나오는 그 무언가다. 의도하지 않은 것들. 이를 테면 잉크가 번졌는데 그 색이 더 예쁘다든지 하는. 결국 내가 했던 작업의 요지는, 그렇게 감정을 배제하고 했던 작업도 결국에는 허술하고 감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역설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런 게 디자인의 매력이다.




 










<Diverse> 포스터, 2007

그리는 도구로서의 글자 ‘Diverse’를 위한 포스터, 700x10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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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의 전문은 <지콜론> 1월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지콜론북 G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