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2010.10.15 18:38

과거의 것을 줄 맞춰 세워 놓고 쌓였던 먼지 털어내면 어엿한 역사가 된다. 먼 과거일수록 먼지의 더께는 두껍고, 순서 맞추는 일은 어려워진다. 늘 보아왔음에도 심상하게 지나쳤던 글자의 역사처럼. 다음은 최정순이라는 이름 속에 잠들어 있던 글자의 과거를 꺼내 두텁게 쌓인 먼지를 털고 가지런히 세워 놓은, 글자 역사의 한 페이지다.

인터뷰 이용제, 류양희, 노은유 / 에디터 정윤희 / 사진 스튜디오 salt






최정순 선생



#1. 조각기를 사용한 최초의 글자


이용제: 경향신문 활자를 만드신 게 6.25 피난 가셨을 때라고 들었어요.
최정순:
맞아. 내가 피난 가서 처음 글자를 납품했던 게 경향신문이야. 부산에 있던 항도신문사는 활자가 없으면 없는 대로 썼는데, 경향신문은 없는 글자가 있으면 만들어 썼다고. 그게 처음으로 활자를 납품한 거였어.


이용제: 그전에 서울신문은 어떻게 입사하셨어요?
최정순:
1952년인가 서울을 수복한 뒤, 돌아와서 서울신문사 공무국장으로 있던 김덕천 씨를 소개 받았었어. 그 사람에게 시험치고 합격해서 1년 7개월 동안 일했지. 서울신문에 가보니까 활자를 손으로 조각한 게 아니고 조각기를 쓴 거더라고. 이런 게 있었구나, 깜짝 놀랐지. 우리나라도 얼마 안 가서 조각기를 사용하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조각기를 연구하기 시작했어. 기계에 대해 배우지도 않은 사람이 조각기를 만들어 보겠다고 덤벼들었으니, 지금 보면 엉터리지. 그래도 만드는 데까지 만들었어.


이용제: 처음 다뤄보는 기계였을 텐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최정순:
조각하는 데 쓰는 조각 바늘을 우리나라에선 못 만들었어. 100개 이상은 주문해야 만들어 줄 수 있는데, 그만큼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내가 당시 부산에 있던 문교부에 편지를 보냈었지. 조각기를 연구했는데 조각 바늘이 문제더라, 일본에서 하나 갖다 줄 수 없겠느냐고 말이야. 문교부에 최현배 씨가 편지를 받아보고는 마침 잘됐다는 거야. 안 그래도 교과서용 활자 때문에 지금 일본에서 기계를 들여오느냐, 원도를 가져가서 새겨올 것이냐 고민 중이었다는 거지. 그런데 기술자가 없어서 이도 저도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생각이 있으면 나더러 일본에 가서 배워오라기에 냉큼 갔지. 그때 내 나이가 37살이었어.


이용제: 국정교과서 글자도 일본에 다녀오신 후에 만드신 건가요?
최정순:
맞아. 일본 다녀왔더니 6개월 안에 국정교과서에 쓸 글자를 만들어 내라고 하데. 일을 준 사람들은 시간이 너무 짧아서 ‘경편자모’로 책을 펴내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내가 정식대로 활자를 만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간이로 제작하자고 했어. 글자를 조각기에서 바로 새기는 방법으로 말이야. 큰 글씨는 굵은 바늘로, 작은 글씨는 가는 바늘로 조각하는 거야. 그렇게 6개월 만에 제작했지만 자모조각기 이용해서 깨끗한 글씨가 나올 수 있었어. 그 다음부터 우리나라 인쇄소에 자모조각기 열풍이 인 거야. 삼화인쇄니 평화당이니 할 것 없이 사장들이 기계를 주문하고 야단이었어.


이용제: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조각기를 사용하신 거였군요. 그 뒤로 조각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잖아요. 당시 국정교과서 글자 원도는 가지고 계신가요?
최정순:
그건 국정교과서에 다 두고 나왔으니 거기서 처분했겠지. 그리고 내가 자모 공장을 할 때 자본 없이 시작을 했어. 원도 그려서 돈 벌겠다고 기술만 믿고 시작했는데, 돈 없이 하니까 발전을 못하고 원도를 팔 수밖에 없었지. 그 동안 숱하게 그린 원도를 거의 다 팔았어. 지금 기종활자라고 거기다 팔아서 유지했지. 원도는 내놓는 게 아니지만, 뭐 어떡해.
 

이용제: 최정호 선생님께 원도를 주셨다는 기록을 봤어요. 어떻게 된 일이죠?
최정순:
국정교과서 일을 끝낸 뒤 인쇄소 중에서 평화당의 글자를 만들기 시작했거든. 그런데 그 때에 삼화인쇄에서 글자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해 왔어. 평화당과 다른 인쇄소 글자는 만들어주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였지. 결국 삼화인쇄에서 받은 계약금과 내가 가지고 있던 글자본을 최정호 씨에게 건네 주고, 삼화인쇄 쪽 글자를 만들어 주라고 했어. 그러니 최정호 씨와 나의 인쇄체가 같지. 최정호 씨가 다른 인쇄소에 만들어 준 글자는 몰라도, 평화당 글자와 삼화인쇄 글자는 같아. 평화당 사장은 글자를 독점하려고 했는데 삼화인쇄에서도 나오니까 상심이 컸었어.


이용제: 평화당과 삼화인쇄 글자의 원도가 되는 글자본은 뭔가요?
최정순:
1910년에 나온 글자본이야.


이용제: 그럼 그 글자본은 선생님 작업이 아니네요?
최정순: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백학성 체야. 초전활판제조소(初田活版製造所)라고 일본사람이 활자 장사를 하던 곳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 사람이 어떻게 백학성 씨를 데려다가 이런 글자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어. 어쨌든 사람들은 박경서 체를 바탕으로
최정호 씨와 내가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야.


이용제: 이 글자본은 언제 어떻게 구하셨나요?
최정순:
1954년인가… 유풍인쇄주식회사 사장이 14살에 수동 주조기를 돌렸어. 그때 남산에 신세계백화점 뒤에 가톨릭계 인쇄소가 있었고, 그 사람이 거기 사환으로 있었거든. 그 인쇄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초전활판제조소가 있었고. 유풍인쇄주식회사 사장이 활자 사러 다니다가 초전활판제조소에서 이 글자본 수십 권을 가지고 온 거지. 일본에서 기술 배워온 다음에 이걸 얻으려고 사방을 다녔는데 마침 유풍인쇄 사장한테서 구한 거지. 확대해 놓고 보니까 참 좋았던거야.


류양희: 사람들은 박경서 선생님의 글자본으로 알고 있는데….
최정순:
박경서 씨는 훨씬 이후 사람이야.


이용제: 선생님께서는 복사본만 가지고 계신 건가요?
최정순:
1954년… 아마 그 이후일 거야. 복사기가 생긴 이후에 복사해서 가지고 있는 거지. 그래서 이걸 가지고 최정호 씨가 이름을 날렸지.


이용제: 그러면 최정호 선생께 주셨다는 글자본이 백학성 체 견본인가요?
최정순:
그렇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최정순 선생의 원도들




최정순 선생의 원도와 이를 복사한 필름





#2. 신문 서체의 변화


이용제: 여러 신문사 서체를 작업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최정순:
내가 인쇄소를 했는데 수금이 잘 안 되니까 신문사 쪽으로 방향을 돌렸어. 중앙일보가 창간하면서 나에게 활자를 만들어 달라고 했지. 한국일보도 내가 만들어 줬어. 신문사 하나 운영하려면 5만 자가 있어야 돼. 한문이니 한글이니 호수마다 만들어야 하고. 그걸 다 갖추는데 정열을 쏟았어. 그리고 글자가 한 번 써서 되느냐? 아니야. 미숙하거든. 그걸 수정해서 쓰면 벌써 10만 자 아냐? 그걸 또 모두 수작업으로 해야 했어. 근데 신문사마다 서로 다른 본문을 쓰려고 하니까 각기 다른 글자를 써주었고. 서울신문은 CTS가 생긴 이후에 일체를 써줬지. 한문은 샤켄 것을 썼고. 신문사 서체는 다 내 글자야. 이을년 씨가 내 서체를 가지고 전국 신문사 글자를 조각해 주었고. 동아일보도 내가 써줬어. 이원모 씨는 내가 하기 8~9년 전에 한문명조식으로 썼다고 그러더라고. 그 이후에 지금 발행되는 글자를 내가 써 줬지. 제호는 최종호 씨 글자고.


류양희: 신문사 활자도 국정교과서 하실 때처럼 원도를 그리고 조각하는 방식으로 작업하신 건가요?
최정순:
93년까지는 전부 원도를 써서 조각하는 거였어. 93년 이후에 컴퓨터가 나오는 바람에 실업자가 됐지.


류양희: 서울시스템에도 계셨죠?
최정순:
평창동에 있을 때인데, 그때 잡지사 인쇄소에 안 모씨가 있었어. 그 사람한테 연락이 와서 갔더니 서울시스템 사장이 와 있더라고. 그때 내 나이 72살이야. 그 사람이 우리 회사 좀 봐 달라고 온 거였어. 82년에 서울신문에 글자 납품한 것을 보고 사장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서울시스템에는 88년에 취직을 했어. 그 때 나는 샤켄에 매달 한글 글자를 수출하고 있었거든. 최정호 씨가 써준 뒤에 부족한 글자를 채우려니 새로 만들어야 했지. 그래서 84년부터 시작해서 한 8~9년 최정호씨가 납품한 서체에 대한 보충을 내가 했어. 글자를 수출했지.


류양희: 원도로 만든 활자가 컴퓨터로 넘어가던 시기에 교과서 서체는 서울시스템에서 원도를 스캔 받아 디지털 작업을 했다고 들었어요. 당시 선생님께서 같이 계셨었나요?
최정순:
그때 했지. 현대에서도 그렇게 했고. 당시 아이들이 제대로 못해서 뒤에 앉아 코치했던 기억이 있지. 참, 옛날 얘기다.


류양희: 곡선자는 샤켄 작업하실 때 쓰셨던 건가요?
최정순:
그렇지. 샤켄에 글자를 납품할 때, 이 곡선자 덕분에 최정호 씨가 만든 글자와 똑같이 만들 수 있었지. 그 사람들도 기가 막히다 했을 거야.


노은유: 제가 일본에 갔었을 때 샤켄에서 선생님과 편지 주고 받으면서 일하셨던 분을 만났어요. 토리노오미(鳥海) 씨라고 나루체, 굴림체 만들 때 편지 주고 받고 하셨다고 들었어요.
최정순:
내가 초청을 받아서 갔었어. 샤켄 가서 강의도 했었는데 우리 한글은 음소글자라고 설명했던 게 기억나네.


노은유: 선생님께서 작업하셨던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보통 글자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손으로 그리거나 곡선자를 쓰는데 선생님은 직접 모양자를 만들어서 활용하셨다고요.
최정순:
응, 맞아.


이용제: 조각기를 사용하실 때와 컴퓨터용 글자를 작업하실 때 무엇이 다른가요?
최정순:
다르지. 간단히 얘기하면 조각기로 하는 건 살이 좀 덜 붙었어도 조각기에 바늘로 후벼나가는 바람에 살이 붙거든. 하지만 CTS에선 그냥 사진이잖아. 미리 살을 붙여 만들어야해. 그게 다르지. 한자의 뼈대도 그냥 써서 살을 붙이지. 지금 새로 개발하려면 결국은 원본을 하나 갖다 놓고 해야 자유롭고 보기 좋은 글자를 만들 수가 있어. 샘플 하나 놓고 해야 돼.







선생이 직접 제작했다는 모양자




#3. 글씨라는 씨앗을 심은 사람


이용제: 파주 활판공방이나 다른 여러 곳에 선생님 자료가 있는 것 같은데요.
최정순:
거기도 자료 줬고. 세종대왕기념회관에 백학성 글자본을 바탕으로 그린 원도(복사한 것)를 줬어. 기념회관엔 작년에 거저 줬지.


류양희: 파주 활판공방에 있는 활자가 선생님 원도라고 들었는데요?
최정순: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작업한 뒤로 비슷한 것이 많이 생겼어.


이용제: 지금 보여주신 것들은 선생님께서 한창 글자 만드실 때 활용하셨던 것들이잖아요. 그게 언제쯤인가요?
최정순:
내가 작업을 80살까지는 했으니까. 이제 14년 지났지. 여든 살에 현대정보기술 고문으로 2년 동안 했어.


이용제: 최근에도 글자를 그리시나요. 작업대가 책상 위에 그대로 있는데요.
최정순:
요즘은 안 써. 신문보기도 눈이 피로한데. 작업대 밑에 불을 밝혀 놓아야 작업하기 좋지. 한평생 그렇게 했어. 최근에 해본 건 한 석 달인가 됐지.


이용제: 석 달이면 아직도 작업을 하시는 거네요. 글자를 디자인하는 후배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으세요?
최정순:
내가 글씨 쓰면서 하고 싶은 얘기는 ‘글씨’라는 거야. 글의 씨. 밭은 사람의 마음이야. 씨를 사람의 마음에 심어. 그 밭에 따라서 시도 나오고 소설도 나오고 서체도 나오고. 그 밭이 참 멋있지 않아? 글씨라는 게 멋있는 이름이야.











인터뷰 뒤에...

90세가 넘어 장만하셨다는 최정순 선생님 댁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걸음이 무거웠다. 한 평생 글자를 그리시고 우리 무화에 크게 기여하신 것에 비해서, 우리 사회가 해드린 일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그리고 더욱 마음이 상한 것은 이 분들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제 연로해 기억이 희미해지신 것을 지켜보며, 지금이라도 지난 일에 대한 기록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최정순 선생님은 다행이다. 이제라도 조금씩 기록을 하니 말이다. 최정순 선생님보다 윗대에 글자 작업을 하신 백학성 님과 박경서 님 등에 대한 기록은 더욱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글자꼴의 뿌리조차 모르는 디자이너가 된 셈이다. _ 이용제


Posted by 지콜론북 G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