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2010.10.15 16:57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이지만, 과거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혼불을 밝혀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존재할 수 있다. 그 ‘오늘’에 글자를 대입하면 어떨까. 조선일보에서 20여 년간 서체를 만들어 온 이남흥 선생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자신의 고집을 태워 글자를 빚고 또 빚어왔다. 조선일보의 서체가 신문서체 가운데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가진 것으로 평가 받는 이유도 그의 고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지만 모두가 잊고 있던 그 이름을 만나 과거의 글자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 이용제 / 에디터 정윤희 / 사진 스튜디오 salt






이남흥 선생





#1. 글자라는 업


이용제: 글자와 관련된 어린 시절의 특별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남흥: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전각을 했어. 쉽게 말해 도장을 만든 거지. 우리 집에 책 궤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 든 것 전부 도장이 찍혀있었어. 낙관 같은 것들. 어려서부터 그것만 가지고 놀았거든. 그래서인지 전각을 곧잘 했었어. 초등학교에 가니까 교장 선생님께서 내 재주를 예쁘게 보셨는지, 도장 파는 칼이 아니라 일반 조각도를 주시면서 초등학교 직인을 파보라는 거야. 할 수 있다고 했지. 그래서 그 도장 찍은 졸업장을 받았어.


이용제: 전각을 했던 경험이 굉장히 중요했었네요?
이남흥: 문자의 꼴은 거기서 다 나와. 말하자면 도장에서 쓰는 전서체에 글자꼴 방식이 다 나와 있는 거지. 활자를 만드는 일을 잘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려서부터 인장을 잘 했었기 때문인 것 같아. 당시 인쇄소에서는 글자를 몇 개 안 사다 놓고 쓰니까 이상한 글자가 나오면 만들어서 합성을 시켜야 됐거든. 이상한 글자가 나오면 여러 글자에서 필요한 부분만 떼어다가 글자를 합성해서 썼지. 그래도 안 되는 글자가 있어. 그러면 종이에 글자를 써서 파는 거야. 나무에다 파는 게 있고 납에다 파는 게 있지.
주로 인쇄소에 가면 납 활자 꽂아서 인쇄하는 방식이라, 이 활자들을 상당히 많이 만들어야 되는데 글씨 쓸 사람이 없었거든. 내가 그걸로 시험 봐서 인쇄소에 들어갔어. 글자라는 게 명필이라고 되는 게 아냐. 간결하게 쓰면서 알아보기 쉬워야 되거든. 빨리빨리 찍어내야 되니까.



이용제: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어떻게 글자를 업으로 삼으셨어요?
이남흥: 먼저 최정호, 최정순 선생 이야기부터 해야겠네. 최정호 선생의 글씨는 이야기책(서적용)에 주로 쓰였지. 가로쓰기로 만드는 책 말이야. 그 분이 재주가 많았어. 일본에서 예술고교(요도바시 미술학원)를 졸업하고 글씨 그리는 걸 연구하고 왔어.
최정순 선생은 서울신문에서 동판을 조각기에 넣고 조각해서 활자를 만들었는데, 어느 정도 상품화할 만큼 되니까 신문사를 퇴사하고 자기 글씨를 그려서 납품하기 시작했지. 최정순 선생이 하는 걸 보니까 나도 글자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데 최정호 선생을 모셔서 내가 만든 글자를 보여드렸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내가 그분께 가르침을 받은 거지. 누군가에게 글자를 배운 건, 최정호 선생께 받았던 그 한 번이 전부야. 당시 최정호, 최정순 선생이 그린 글자들을 조금씩 갖고 있어. 샘플 식으로. 중국이니 일본의 글자들도 구색을 맞춰 조금씩 갖고 있는데 그걸 보면서 따라 그리기 시작했지.






조선일보의 납활자 시대를 종언할 때 만들었던 기념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남흥 선생의 전각 도구들 





#2. 신문 서체의 파랑


이용제: 조선일보에 입사하신 건 언제인가요?

이남흥: 1976년 6월 25일에 입사했지. 내가 나이가 먹어 기억이 가물가물해도 그건 절대 안 잊어버려.


이용제: 조선일보에서 일하시면서 서체의 많은 변화를 겪으셨죠?
이남흥: 당시 서체가 대부분 4:5의 비율로 옆으로 조금 넓은 서체였어. 그래서 편평체라고 불렀지. 안정되고 튼튼한 글자였어. 작은 글씨지만 크게 잘 보이고. 그런데 컴퓨터가 생기면서 글자를 바꿔야 되는 상황이 생긴 거야. 정방형으로 글씨를 고친 거지. 문제는, 정방형으로 그리는 감각으로는 정체를 그리기가 힘들어. 자꾸 원래 형태로 가게 돼서 글자가 넓고 좁고 해. 지금은 장체로 돼 있을 거야. 그러면 한글은 좀 늘씬해 보이는데, 문제는 한문이지. 한글은 장체로 되어 있는데 한자는 여전히 정방형에 가깝거든. 그래서 제 꼴이 안 나오는 거야. 지금도 신문 보면 덜 좁혀져서 나오는 게 있어. 날씬하게 보여야 되는데.


이용제: 신문에 사용하는 글자수가 굉장히 많은데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이남흥: 당시 회사에서는 서체개발팀을 구성해서 서시철, 민창기 씨한테 맡겼지. 컴퓨터로 서체를 개발하라고 했어. 나는 고수하던 한글, 한문을 만들었어. 인원도 부족했고, 또 내가 실력을 보여준 적도 없는 말단 사원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양쪽에 같은 일을 시킨 거야. 그게 회사의 운영 방식인 거지. 어떤 회사고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니라 경쟁을 붙이는 게 운영 방식이거든. 서시철 씨는 미술부에 있으면서 타이포그래피를 붙들며 편집도 하니까 회사에서 보기에는 곧잘 할 것 같았는지 팀을 만들어 줬어. 그런데 나는 누구랑 같이는 안 하거든. 글자라는 게 같이 할 수 없는 일이잖아. 여러 사람이 한 글자를 만들면 서로 모양이 달라져서 일이 되지 않아. 어쨌든 그렇게 시작해 중국까지 가서 글자를 얻어오고 별 짓을 다 했는데도 깨끗한 글씨를 만들기가 힘들더라고. 회사에서 좋은 글씨를 한 번에 사오지 않고 나눠 사서 조합해 쓰니까 글자가 깨끗하질 못한 거야. 그것까지 파악하진 못했어. 자꾸 신문 활자를 놓고 크게 만들어라 작게 만들어라 지적만 하고. 그러니 부장들은 매일 깨지는 거야. 인쇄 잘못됐다고.


이용제: 전산화 과정을 직접 작업하셨나요?
이남흥: 전산화가 시작되니까 일본에서 전산 교육을 받아야 했어. 내가 갔어야 했는데 위암에 걸려서 못 가고 밑에 있던 사람 둘을 보내서 글자 만드는 훈련을 시켰어. 그렇게 훈련을 시킨 다음에 여직원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을 데리고 글자를 만들기 시작했지. 내가 직접 배웠어도 손이 느려 소용이 없으니까 안 배웠어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사무원들 쭉 앉혀 놓고 화면 띄우게 한 다음 그 옆에 앉아서 이래라, 저래라 수정을 시켰던 거야. 컴퓨터가 안 되니까 매직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수정을 지시했지. 그중 김영균이라는 친구가 있었어. 내가 그 친구를 뽑아서 그렇게 훈련시켰지. 이것만 할 수 있으면 굶을 걱정은 없으니 소질이 있는지는 모르나 죽기 살기로 매달리라고 했지. 그 친구가 컴퓨터에는 소질이 있었는데, 어지간히 잘 하더라고. 내가 데리고 있던 잘 하는 사람들은 여러 회사에서 다 데려갔지.


이용제: 그러면 조선일보 계실 때 한글, 한자 서체는 모두 끝내신 건가요?
이남흥:
끝냈는데, 3~4년 전에 김영균 씨와 조의환 씨가 중국, 일본, 대만에 가서 서체 일부를 받아왔어. 조선일보 서체를 가운데 놓고 비교하는 거지. 좋은 건 심으면 되니까. 조의환 씨가 자꾸 점심 먹자고 해서 만났더니 글자 가져와서 수정을 해달라고 하더라고. 중국식으로 글자를 써도 되냐 안 되냐 물으면서. 당시에 내가 중국 책을 많이 보고 있었거든. 나는 낯설지 않아서 좋은데 독자가 반발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랬지. 하지만 사람들은 메시지만 전달받으면 되지 글자에는 관심이 없잖아.


이용제: 지금의 조선일보 글자는 어떻게 보세요?
이남흥:
뜯어보면 문제가 많아. 그 전에는 가로로 ‘ㅡ’자를 그을 때 이게 사선으로 올라갔어. 그러다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넘어가면서 직선으로 갔단 말이야. ‘ㄷ’자의 이음부분도 확 올렸다고. 최정순 체가 그래. 최정순 선생이 그거 하나는 고집했어. 그런데 이렇게 해 놓은 글자를 확대하면 ‘ㄷ’자 한 자만 이상해지거든. 그런 문제 말고도 문제점이 아직 있어.






이남흥 선생의 원도





#3. 폐기된 역사


이용제: 퇴임 후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남흥: 여기저기서 제안이 있었지. 근데 일을 많이 하진 않았어. 한 번은 삼성 서체를 개발해야 되는데 감수를 해달라더군. 기존 서체를 수정해서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 그것도 안 한다고 했어. 납품할 때 누가 감수했느냐가 관건이거든. 나는 무명이지만 조선일보 서체를 완성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이용하려는 것이지 좋은 글자를 만들어서 납품하려는 게 아니잖아. 필요하다면 자문은 해 줄 수 있지만 감수는 싫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고집쟁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고집 없으면 어떻게 글씨를 만드나. 물론 내 얘기가 다 맞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주장하고 살았어. 하지만 사람들이 한 번 볼 수 있느냐고 연락하면 오라고 해. 알려 달라는 건 다 알려줘. 요즘 세상에 혼자만 갖고 있어선 안돼. 오픈하면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보이고 그러면서 발전하는 거니까.


이용제: 저도 글자 디자인한 지 19년 정도 됐는데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아요. 그럴 때에는 최정호 선생님이 그린 원도 보면서 공부해요.
이남흥: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해. 인쇄 공학을 모르고는 글자 만들어 봐야 허탕이잖아. 예를 들어 ‘木’자도 가로 획 두께는 이렇게, 세리프는 저렇게, 또 기둥 두께는 또 이렇게 하고… 그게 관건이야. 공학적으로 이걸 1mm로 놨을 때 35% 확대되고, 잉크가 번지고 이런 게 중요한 단서거든. 일본에서 인쇄에 관해 나오는 출판물을 보면 아무렇게나 놓고 그리는 게 아니고 이런 공학적인 것들을 생각하면서 설계를 해. 같은 군의 글자끼리 모아서 설계를 한다고. 뚱뚱한 글자, 날씬한 글자끼리 모아놓고 같이 연구를 해야 돼. 기술만 가지고 글자 꼴만 예쁘게 만드는 건 아니야. 그래서 난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용제: 예전에 작업하신 원도를 정리해서 사용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자료가 아깝잖아요.
이남흥: 원도는 회사에 있고, 복사본을 갖고 있지. 나름대로 갈무리해서 모아 놓은 것이지 완전무결하게 정리해서 갖고 있는 건 아니야. 정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고, 또 쓸 데가 있어야지.


이용제: 글자꼴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실제로 글자들은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혹시 선생님께서 글자 그리시면서 쌓으신 경험을 기록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이남흥:
내가 고집쟁이긴 해도 오픈된 늙은이야. 만나자고 해도 고민인 게, 뭘 알려주나 생각하게 되더라고. 그게 잘 안돼. 내가 편지글도 못 쓰는 사람인데, 그 어려운 걸 어떻게 해.


이용제: 후배 입장에서 선배님들이 하셨던 걸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거든요.
이남흥: 조선일보의 활자 역사 자료는 내가 따로 가지고 있긴 하지만 관리하고 보관하는 사람이 없어. 원도도 다 폐기처분 했을 거야. 잘못된 역사라도 보관해야 하는데, 그 많은 자료를 다 창고에 쌓아 놓으니 나도 애석한 부분이 많아. 조선일보 나오면서 잘 보관해 두라고 했는데 다 버렸더라고. 담당자가 있어도, 떠나면 그만이잖아. 우리나라는 보관하는 게 없어. 자리에 있을 때나 써먹지 떠나면 그만이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자료들이지. 작은 칼 하나라도 말이야. 어떤 사람이 활자 역사 편찬하는데 쓰던 칼 한 자루 달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내 글자 다 버리고 칼만 주면 뭐 할 거야. 그냥 이게 활자 파던 칼이다, 하고 마는 거지. 이치를 모르니까. 어쨌든 이런 것들이 잘 정리되어야 하는데….


이용제: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이남흥: 재주 있는 젊은이 보고 글자 하라고 권하고 싶진 않아. 먹고 살 걱정이 해결되지 않는데다, 10년을 매달려도 눈에 보이게 진전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여도 애써 찾다 보면 보이겠지. 그리고 공부라는 건 훔치는 기술이 있어야 하거든. 아무리 책을 들여다 본다고 배워지는 게 아니더라고. 어깨너머로 배웠다고들 하잖아. 옆에서 슬쩍 보고도 딱 들어오는 게 있거든. 그게 진짜 자기 걸로 만드는 거야.




Posted by 지콜론북 G콜론